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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메인 예고편

1845년 최초의 신부의 탄생 이야기를 그린 영화

때는 1845년 , 조선 근대화의 문을 열다.

호기심 많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청년 김대건의 조선인 최초의 신부가 되라는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신학생 동기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마카오의 유학길을 떠나게 됩니다. 6개월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길 (120리). 마카오의 신학교에 마침내 도착하게 되고 신부들은 환영해준다.

 

그곳에서는 추가로 조선에 서양인 신부 2명을 더 보낼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김대건 일행은 생소했던 불어와 라틴어를 통해 신학을 배우게 되는데 모험심이 강한 김대건은 신학 이외에도 지도를 보는 것을 좋아했으며 지도를 보면서 조선에 신부가 탄생하지 못한 이유를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조선의 천주교에 대한 탄압은 점점 더 심해져 갔으며 모방 신부 또한 안전하지 못했고, 그러던 어느 날 중국과 전쟁 중이던 프랑스의 세실 함장이 군함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가 수교를 계획하고 있었고 이러한 수교를 위해 조선어와 프랑스에 능통한 사람을 통역으로 요청하였으며 그 일을 김대건이 수행하게 됩니다.

 

대건은 조선땅에 가는 게 탐탁지 않은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군함을 타고 조선에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조선에선 선교활동을 할 수도 없으며 발각되면 박해당하고 사형당할 위기라서 조선으로 보낸 밀사와 사신단이 오지 않아 걱정이었습니다. 며칠 후 대건은 군함을 타고 조선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틀어져 의주를 통하여 조선으로 향하기로 하며 혹독한 겨울 속에서 갖가지 위험을 피해 조선에서 조사를 끝내고 다시 만주로 향하게 됩니다. 다시금 서울로 돌아와 부제서품을 받았으며 다시금 청으로 갈 계획을 세우는데, 다른 곳보다는 안전한 배를 통해서 청으로 가서 서양 신부를 대려 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배는 구했으나 조악함으로 인해 가는 길에 큰 고생을 하지만 끝내 중국에 있는 영국 영사관을 도착하게 되고 숱한 노력 끝에 조선으로 다시금 돌아오게 됩니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서 김대건은 드디어 조선 최초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앞에 펼쳐진 시련은 이제 시작일 뿐 인대.

김대건의 출생과 유년 시절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면천군 범서면 솔뫼마을 (송산리, 현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김진후(비오) 이후 집안 대대로 천주교를 믿게 됩니다. 증조부 김진후는 본래 하급관리였다가 천주교 신자인 며느리의 모범적인 행실을 보고 자신도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또 김대건의 작은할아버지와 김대건의 부친 또한 천주교 신자였으며 김대건의 부친 김제준(이냐시오)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하였습니다. 조선 정부와 관료들은 끊임없이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하였으며 이로 인해 김대건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습니다.

 

김대건은 7살까지 고향인 충청도 면천에서 살다가 가족들과 함께 경기도 용인의 산골마을인 골배마실로 피신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박해를 피해서 옹기를 제조하여 판매해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복음을 전하는 천주교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는 골배마실을 성지로 삼고 있으며 김대건은 1836년 청소년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 은이 성지를 방문한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회 피에르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한양에서 라틴어등의 기초적인 신학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계몽사의 어린이 그림 위인전기 <김대건>에 의하면, 모방 신부는 김대건의 집안 내력을 듣고는, 김대건을 천주교 신부로 키울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김대건 신부 성인이 되다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새남터(노량진)에서 12명의 사형집행인에 의해 참수되었으며, 목이 군문에 걸려 효수되었습니다. 본래 양심수의 시체는 3일 내에 가족이 찾아가도록 되어있으나 김대건의 시체는 가매장되었습니다.

 

비밀리에 천주교 신자인 이민식이 김대건의 시신을 미리내 성지(경기도 안성)로 옮겼다고 합니다. 1960년 7월 5일 김대건의 시신은 혜화동의 가톨릭 대학교 안의 성당에 이장되었습니다.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가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 쿠 펠라 대교구의 '성요셉 성당'에 제대로 안치될 예정입니다.

 

필리핀 교황대사관 1등 참사관 까보레 몬시뇰은 과거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한국 교회의 순교 역사와 순교 성인에 큰 감명을 받았으며 '성 김대건 안드레아 탄생 200돌 희년'을 맞아 유해를 부르키나파소의 성당에 봉인하고 싶다고 염 추기경에 요청했습니다.

 

1984년 5월 6일 교황 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김대건을 성인으로 시 성하였습니다. 성 김대건 신부는 한국의 천주교회 신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추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