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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치즈의 역사의 시작은 임실성당에 부임한 한 외국인 신부 지정환신부( 본명 : 디디에 세스테벤스 )의 손에 의해서 1967년에 처음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의 처절한 삶을 살아가던 주민들을 돕기 위해서 서양에서 산양 2마리를 들여왔으며 임실이라는 이 마을은 산과 풀로 이루어진 마을이었기에 산양을 키워내고 치즈를 생산해 내기에는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천 억의 경제효과의 기적을 일궈낸 '임실N치즈'

지정환 신부는 1964년부터 산양 2마리를 가지고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산이 많고 농사 지을 땅이 부족하여 가난이 대물림되는 임실지역의 주민들을 돕기 위해서 직접 방법을 개척해 내려는 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하기 쉬웠던 산양유의 특성 때문에 지정환 신부는 3년여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1967년 치즈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1969년에는 이탈리아로 직접 가서 석 달간 치즈 제조 기술을 배워오기도 했답니다. 그는 1968년 카망베르치즈, 1970년에는 체더치즈 등을 생산해 내며 당신 국내 최대 호텔인 조선호텔에 치즈를 납품했습니다. 

 

이를 발판으로 삼아서 판매망을 넓혀내었으며 산양 대신 젖소를 도입하고 신용협동조합과 치즈공장을 통하여 치즈공장을 더 크게 만들고 더 많이 양산할 수 있도록 계획을 했으며 이익금은 조합원들과 함께 나눴습니다.

지정환 신부는 1981년 치즈사업의 기틀을 구축하고 안정화시켰으며 주민들 스스로가 공장을 운영할 수 있게끔 본인의 자산을 나눠주고 떠났습니다. 다리가 마비되는 다발성 신경경화증이 악화되어 어쩔 수 없이 17년 만에 임실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벨기에까지 가서 3년간의 긴 치료를 받고 그는 1984년 귀국하여 완주군 소양면에 중증 장애인을 위한 재활센터인 '무지개 가족'을 설립하여 현재까지도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정환 신부는 다양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2월 법무부로부터 한국 국적을 얻었다고 합니다.

임실치즈역사문화공간 건설

한국 치즈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벨기에 출신 지정환신부가 1978년 7월 전북 임실의 치즈공장에서 체더치즈를 만드는 모습을 담긴 사진도 있고 1964년 부임한 이후부터 최근까지 관련된 모든 사진들을 모아서 지정환 신부가 앨범으로 엮인 사진들을 한대 모아 53년의 임실치즈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1960년대 임실읍내 모습부터 치즈 만드는 과정부터 초기의 치즈 모양이나 치즈공장 짓는 모습 등 다양한 사진이 담겨 있으며 지정환 신부는 "대한민국 치즈의 원조라는 브랜드는 그냥 얻은 것이 아닌 임실 주민들과 '다 같이 잘 살아보자'는 공동체 정신과 협력으로 일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은 지 신부의 발자취는 임실치즈 역사 문화공간의 중요한 콘텐츠라고 했습니다.

 

임실치즈농협의 경제효과는 1천 억 원

'임실 N치즈'의 발전사는 임실치즈농협과 함께 해왔습니다. 1967년 지정환 신부가 국내 최초의 치즈공장을 만들었고 이어 1986년에는 자리를 이전했습니다. 199년 임실치즈농협으로 이름을 변경한 후 1997년 신용사업을 병행, 2010년에는 13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서 현대식 생산공장을 건설했다고 합니다.

임실치즈농협에서는 총 14종의 제품을 생산하며 자연치즈, 가공치즈, 숙성치즈 등을 생산합니다. 또 블루베리와 딸기 요구르트 등에 이어서 최근에는 다양한 치즈를 활용한 냉동식품도 개발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국산 치즈의 원조인 임실치즈농협은 임실지역 14개 낙농가와 낙농업체에서 생산하는 치즈와 요구르트의 대표생산업체이며 전국에 27개의 가맹점과 판매점을 운영하며 총매출과 경제효과가 무려 1천 억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아시아 지역에도 판매점을 확보하며 치즈와 요구르트를 수출하여 매출을 극대화시키고 있다고 합니다.